
전통주 = 우리나라 술일까요?
장수막걸리, 매취순, 복분자주가 전통주인 줄 알았다면, 오늘 글을 꼭 읽어보세요.

국내 주세법상 '전통주'로 분류되려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시•도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제조(경주교동법주, 면천두견주, 문배주 등)하거나, 식품명인이 제조(송화백일주, 옥로주, 가야곡왕주 등)하거나, 국산 농산물을 주원료로 만들어야 인정됩니다.
그러니 장수막걸리는 엄연한 의미에서 우리술(전통주)이 아닙니다.

전통주의 법적 기준부터 탁주·약청주·증류주·과실주·기타주류까지 대한민국 전통주의 진짜 세계를 한눈에 정리했습니다(각각의 주류와 어울리는 디테일한 음식 페어링은 이후 포스팅에서 차근차근 다뤄볼까 합니다).
탁주 - 전통의 일상주, 막걸리의 진실

탁주는 대표적인 발효주로, 멥쌀 또는 찹쌀을 주원료로 하여 누룩을 넣고 발효시킨 뒤 체로 막 걸러냈다는 뜻의 '걸쭉한 술'입니다. 우리가 흔히 '막걸리'라고 부르는 술이 탁주에 속합니다. 장수막걸리, 서울막걸리처럼 대량생산되는 제품도 있고, 지역에서 소규모로 생산되는 생막걸리도 있습니다.

탁주의 가장 큰 매력은 유산균과 효모가 살아있는 생주라는 점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일반적으로 5~7도 정도로 낮아 마시기 편하고, 구수하고 달큰한 맛 덕분에 전통적인 한식과 잘 어울립니다. 특히 파전, 김치전, 두부김치, 전골류와 찰떡궁합인데요, 탁주의 풍미는 음식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에는 발효 기술의 발전으로 고급 탁주, 향미 중심의 프리미엄 막걸리도 다양하게 출시되며, MZ세대를 겨냥한 패키지와 향도 돋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수막걸리와 같이 사용하는 재료와 전통 제조방식과 거리가 있는 제품은 법적으로 '전통주'가 아니라는거죠.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진짜 전통주를 이해하는 첫걸음입니다.
약•청주 - 고귀한 술, 조선의 궁중주

약•청주는 맑은 술, 흔히 '청주'라고 부르는 술입니다. 탁주를 발효시킨 후, 술지게미를 정밀하게 걸러내고 다시 숙성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역사적으로는 궁중의 의례나 제사에 사용된 술로, 고급스럽고 은은한 풍미가 특징입니다. 약재를 넣어 숙성하는 경우도 많아, '약주'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대표적인 약•청주로는 경주법주, 오메기술, 청명주, 일엽편주 등이 있으며, 대부분 수작업으로 정성스럽게 빚어집니다. 알코올 도수는 12도 내외이며, 투명하고 깔끔한 맛 덕분에 회, 해산물 요리, 가벼운 전채요리와 조화를 이룹니다. 약•청주는 발효의 섬세함과 양조자의 기술이 응축된 술이기 때문에, 소량 생산이 대부분이며 가격대도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가치를 지닌 술로, 한 모금만으로도 전통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전통주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약•청주 한 병을 추천합니다.
증류주 - 불의 예술, 전통 소주와 증류 방식
증류주는 발효된 술을 증류기에 넣고 증기로 추출한 술로, 높은 도수와 깊은 향이 특징입니다. 일반적으로 소주, 위스키, 브랜디, 리큐르가 증류주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초록병 소주는 희석식 소주로 사탕수수나 타피오카 등에서 추출한 95도 내외의 고순도 주정(식용 에탄올)에 물과 첨가물을 혼합해 만든 산업화된 제품으로, 맛은 균일하지만 전통성과 풍미는 떨어집니다.

반면 전통 증류주는 단식증류 방식을 사용해 술 고유의 향과 깊은 풍미를 살리며, 대부분 상압 조건에서 만들어집니다. 일부 프리미엄 제품은 감압 증류를 적용해 섬세한 향을 보존하기도 합니다. 연속증류는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만, 향이 단조로워 전통주보다는 희석식 소주나 공업용 알코올에 주로 사용됩니다. 반면에 문배주, 안동소주, 삼해소주 등은 대표적인 전통방식 증류주로, 보통 알코올 도수 25도 이상입니다. 대부분 단식/상압 증류 방식으로, 술의 본연의 향과 맛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증류주는 고기류와 매우 잘 어울리는데요, 특히 수육, 족발, 갈비찜, 불고기와 함께 즐기면 향과 맛이 배가됩니다. 최근에는 전통 증류주를 칵테일 기주로 사용하는 바도 많아지면서, MZ세대나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전주 이강주, 진도 홍주처럼, 증류해 만든 주정에 과실, 과즙, 약초 등의 성분을 넣고 감미료를 가당을 혼성주를 리큐르라고 합니다. 전통주 주세법상 분류에 리큐르도 증류주에 속합니다.
과실주(한국 와인) - 과일의 풍미를 담은 새로운 전통주

한국 와인은 국내산 포도, 복분자, 블루베리, 사과 등을 발효시켜 만든 과실주입니다. 와인은 원래 포도로 만든 술을 의미하지만 국내에서는 전통주 산업이 발전하면서 사과, 머루, 산딸기, 복분자, 블루베리 등 지역 특산 과일을 발효시킨 술이 등장했고, 이들 중 몇몇은 발효, 숙성, 병입 과정 등이 와인을 만드는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와인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특히 복분자와인, 오미자와인, 산머루와인은 수출도 활발한 인기 품목입니다. 일반 와인과 달리, 한국 와인은 당도가 높은 편이며 알코올 도수는 10~13도 사이입니다.

과일 특유의 산미와 풍미가 살아 있어, 디저트, 치즈 플래터, 바비큐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특히 오미자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인 '오미로제 연'은 상큼하면서도 매콤한 양념 요리와도 잘 맞아, 한식과의 궁합도 좋고, 해외의 스파클링 로제와인과 견주어도 손색 없을만큼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와인이 전통주냐'는 논란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국산 과실을 활용하여 전통 방식으로 제조했으므로 과실주는 주세법상 '전통주' 범주에 포함됩니다. 단, 수입 원재료를 사용하거나 단순 혼합한 제품은 제외됩니다. 한국 와인은 지역 농산물의 가치를 고급화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타 주류 - 달콤쌉쌀한 실험정신
기타주류는 인삼주, 구기자주, 오가피주 등 창의적인 원료를 조합한 술 전체를 지칭합니다. 즉, 바나나맛 막걸리, 복숭아맛 막걸리, 밤 막걸리 등 ‘막걸리’라는 이름을 쓴다고 해서 모두가 탁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죠. 좀 어려울 수 있지만, 밤 막걸리를 예로 들었을 때 실제 밤 성분을 넣었다면 탁주로, 밤 향처럼 인공 향료만 넣은 가향 제품은 주세법상 기타주류로 분류되지만 발효방식부터 차이가 있기때문에 이렇게 분류됩니다.
업계에서는 '창작 전통주'라는 새로운 범주로 이들을 수용하려는 목소리도 있지만, 전통주 산업을 보호하고 우리 술 문화를 지키기 위해선, 성분표를 꼼꼼히 확인하는 소비자의 태도가 중요하겠습니다.

또 최근에는 벌꿀을 발효시켜 만든 미드(Mead)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미드도 기타주류에 포함됩니다.
전통주를 아는 것은, 문화를 마시는 것

우리 전통주 안에는 우리의 문화와 지역, 역사와 기술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그러니 ‘장수막걸리를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전통주’를 알고 싶다면 그 배경과 철학까지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탁주, 약청주, 증류주, 한국 와인, 그리고 기타주류까지—전통주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도 깊습니다. 이제부터는 술을 고를 때 라벨을 살펴보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그 술이 어떤 재료로, 어떤 방식으로 빚어졌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한 병의 술이 담고 있는 수고와 이야기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앞으로 이 공간에서는 단순한 술 소개를 넘어, 각 전통주가 품은 철학과 배경, 그리고 함께 곁들이면 더 빛나는 음식 이야기까지 차근차근 풀어가 볼 예정입니다. 진짜 전통주를 알고 싶은 여러분 곁에서, 잇토리는 그 매력을 함께 나누는 '전통주 이야기꾼'으로서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마셔본 전통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술은 무엇인가요? 댓글로 함께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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