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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다이어리/전통주 TMI

전통주 판매 업장이라면 꼭 알아야 할 테이스팅 표현법

by 잇토리 2025. 4. 2.

전통주는 지역성과 역사, 재료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긴 문화 콘텐츠이자, 미식의 영역으로 확장 가능한 주류입니다. 다만 아직까지 전통주의 테이스팅을 표현하는 언어는 다소 한정적이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문 업장은 많지 않은 편입니다. 물론 전통주 소믈리에가 상주한 주점이나 바 등에서 이러한 시도를 엿볼 수 있지만, 보다 다양한 감각적 언어와 접근 방식이 활성화된다면 우리술을 즐기는 문화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레 예상해봅니다. 

전통주점 우정(압구정)

이번 포스팅에서는 술맛을 더욱 맛깔나게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테이스팅 언어와 실전 활용법을 제안합니다. 전통주 관련 업장 소믈리에/운영자를 위한 가이드이기도 하지만, 전통주를 더 깊이 이해하고 맛 표현을 좀 더 풍부하게 해보고 싶은 분들, 그리고 술자리에 앉아 “향은 아카시아 꽃으로 시작되다가 곡물 향으로 툭 떨어지는데 후미에 미세한 산미 터치가 있네요.", "이 증류주는 온도가 살짝 올라가면 또 다른 향이 날 거 같은데요.”라고 말하며 어깨 한번 으쓱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업계 내에서 어떤 현실적인 제약과 과제가 있는지도 함께 짚어봅니다. 전통주를 단지 ‘마시는 술’이 아닌, ‘말할 수 있는 술’로 만들기 위한 시작점이 되길 바랍니다.

전통주도 ‘미식의 언어’가 필요하다

전통주는 원재료, 발효 방식, 숙성 환경에 따라 놀라울 만큼 다양한 향과 맛을 지닙니다. 곡물의 고소한 향, 누룩 특유의 은은한 발효 향, 술의 질감, 달콤한 맛, 그리고 청량한 끝맛까지 — 단순히 ‘막걸리’, ‘청주’ 같은 이름으로 구분하기엔 섬세한 차이가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많은 판매자와 소비자들이 이러한 복합적인 특성을 단 몇 개의 단어로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전통주가 은은한 꽃향을 지니고, 부드러운 산미에 깔끔한 목넘김을 갖고 있다면 “산뜻한 플로럴 계열의 약주”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하지만 실제로는 “달다”, “부드럽다”, “맛있다” 같은 단편적인 묘사로 그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감각적인 맛 표현은 미식씬의 핵심 도구입니다. 맛을 표현할 수 있어야 술과 음식의 페어링도 가능하고,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거나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전통주를 ‘미식의 세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곡물의 종류, 발효의 깊이, 산미의 강도, 질감의 부드러움, 잔향의 지속성 등을 감각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어휘 체계가 필요합니다. 단순한 맛 표현을 넘어, 다층적인 감각을 포착하고 풀어낼 수 있는 언어 말이죠.

전통주 업장에서 꼭 알아야 할 테이스팅 표현

탁주라고 다 같은 맛은 아니니까요

전통주를 다루는 레스토랑, 주점, 바, 보틀샵 등에서는 테이스팅 언어를 ‘판매 전략의 핵심 요소’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객이 술을 선택할 때 가장 궁금해하는 건 “내 입맛에 맞을까?”, “어떤 향이 날까?”, “음식과 잘 어울릴까?” 같은 요소입니다. 물론 가격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요. 고객의 취향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술을 고르는 데 있어 맛 표현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자면 고객이 선호하는 주종은 무엇인지, 지금 이 자리가 혼술인지 친구 모임인지, 데이트인지, 가족 식사인지, 생일이나 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인지에 따라 추천해야 할 술은 전혀 달라집니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그 모든 요소의 중심이 되는 ‘맛 표현 언어’에 집중해보려 합니다.
 
예를 들어 “무화과향이 있는 약주예요”, “살짝 톡 쏘는 청량감 있어 요즘같은 여름날 식전주로 시작하기 좋은 탁주예요.” 등과 같이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맛 표현을 사용한다면, 고객은 자신이 마실 술에 대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선택에 대한 신뢰도까지 높아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정돈된 표현은 고객의 재방문율과 만족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왜냐하면 한 번 정확한 추천을 경험한 고객은, 다음 방문에서도 “여기 직원은 내 취향을 잘 이해하더라”는 신뢰를 갖고 다시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통주 업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테이스팅 언어는 다음과 같이 대략적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향 (Aroma)배, 사과, 복숭아, 살구, 유자, 꽃향(매화, 아카시아), 고소한 곡물 향, 찹쌀떡 향, 누룩 향, 유산균 향, 나무 향, 흙냄새 등“잔에 대자마자 배 향이 느껴지실거에요”
“은은하게 달큰한 곡물향이 매력적인 술입니다”
맛 (Taste)산미 있음, 은은한 단맛, 쌉쌀함, 단산조화, 감칠맛, 구수함, 잔당감, 농후한 맛, 담백함, 약간 짠맛 등“단맛보다는 산미 중심이에요”
“뒤에 감칠맛이 살짝 감깁니다”
질감 (Texture)묵직함, 크리미함, 부드러움, 걸쭉함, 청량함, 물처럼 가벼움, 텁텁함, 농도 높음, 입자감 고운 등“질감이 엄청 크리미해요”
“입자감이 고와서 텁텁하지 않아요”
잔향 (Finish)깔끔한 마무리, 입 안에 남는 단향, 쌉쌀한 뒷맛, 고소한 향이 오래감, 깔끔하게 끊김, 누룩 잔향 지속 등“끝에 고소한 잔향이 꽤 오래 남을거에요”
“깔끔하게 마무리되서 음식이랑 잘 맞을 맛이에요”
페어링 (Pairing)해산물, 회, 육회, 매운 음식, 구이류, 젓갈, 김치류, 튀김류, 나물 반찬, 디저트(약과, 한과), 치즈 등“이건 참치뱃살 같은 기름진 회랑 곁들이시면 기름기 싹 잡아주는 역할을 해요”
“매운 음식하고 균형 맞추기 좋아요”
음용 방법/온도니트, 온더락, 하이볼로, *미즈와리, *오유와리, 차게, 살짝 차게, 실온, 따뜻하게(데워서) 등“실온상태로 니트로 마셨을 때 바닐라 향이 더 잘 살아나요”
“얼음을 넣어서 온더락으로 드시면 단맛이 부드럽게 퍼지고 질감도 더 부드러워질 거에요”
마실 상황/기분/날씨혼술, 기념일, 식사 전후, 가족 식사, 조용한 자리, 대화 중심, 디저트 타임, 기분이 다운됐을 때, 좋은 날일때, 비/눈 올 때, 꽃이 만개했을 때, 흐린 날씨 등“기념일에 분위기 내기 좋을 술이에요”
“식사 마치시고 디저트처럼 마무리주로 마시기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미즈와리((水割り)/오유와리(お湯割り): 찬물이나 데운 물에 독주를 타서 마시는 일본식 주류 음용법. 풍미가 부드러워집니다. 

테이스팅 표현력은 경험으로 쌓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표현력을 갖추기 위해선 설명이나 표현법을 무작정 외우는 게 아니라, 주류 박람회나 시음회 등을 통해 양조자를 직접 만나서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면서 나만의 언어로 바꿔보는 겁니다. 직접 다양한 술을 시음해보고, 몸에 익히는 경험의 축적이 필수적입니다.  여기에 실전경험까지 쌓는다면 표현력은 더욱 빠르게 풍성해질 수 있겠죠. 

틈틈히 다양한 잔에 블라인드 테이스팅도 해봅니다

이런 실전 경험이 쌓일수록, 고객 응대에서도 표현력은 훨씬 자연스럽게 발휘됩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어떤 술인지 물어봤을 때, 아무리 익숙한 술이라도 마신 지 오래됐다면 테이스팅 노트가 바로 떠오르지 않을 수 있어요. 이럴 땐 “시음 도와드릴까요?” 하고 함께 한 잔 맛보며 감각을 되살리는 것도 훌륭한 대응법입니다. 

온도별 시음 테스트

또, 매장에 손님이 남기고 간 술이 있다면 버리지 말고 꼭 샘플링해보세요. 온도가 살짝 올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처음 마셨을 때와는 또 다른 풍미가 느껴질 수도 있고, 그런 미세한 차이를 경험으로 축적하면서 나만의 테이스팅 표현법을 만들어보세요.
맛 표현은 결국 ‘미각과 감각으로 배우는 언어’이기 때문에, 꾸준한 시음과 테이스팅 노트 작성을 통해 나만의 감각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표현 체계 정립을 위한 실무 교육과 제도화

한국가양주연구소 전통주 소믈리에 양성과정

다만, 문제는 이와 같은 표현 언어가 여전히 업장 현장에서 체계적으로 공유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가양주연구소, 막걸리학교 등에서 전통주 소믈리에 교육, 테이스팅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육을 듣는 이들 대부분이 ‘애호가’ 중심이라는 점이 현실입니다. 현장 실무자가 이 교육을 받고 이를 매장 운영에 접목하는 경우는 아직 드문 편에 속합니다.
결국, 표현 언어가 있어도 현장에 전파되지 않고, 교육과 산업이 단절된 구조 속에서 진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실천적 대안이 필요합니다:

  • 실무자 대상의 전통주 테이스팅 교육 의무화
  • 전통주 메뉴판에 테이스팅 설명 기재 권장
  • 지역별 전통주의 고유 향미 설명체계 구축

이러한 방식으로 전통주 표현 언어가 산업 전반에서 공유된다면, 더 많은 소비자가 술을 정확히 이해하고, 매장에서의 경험 또한 한층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전통주의 매력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맛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이는 미식가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업장에서의 판매를 보다 정교하게 만듭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보적인 우리술의 가치를 잘 전달하려면 이제는 감각의 언어, 표현의 기술, 교육의 연결성이 산업 전반에 자리잡아야 할 때입니다. 단지 '술이 맛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는, 술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술맛 표현 언어는 고객 경험의 첫 스텝

술 설명을 하는 전통주 소믈리에(한식주점 디히랑)

이번 포스팅에서는 테이스팅 표현만이 아니라, 교육과 산업 사이의 단절이 어떤 문제를 낳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짚어보았습니다. 맛을 잘 설명하는 기술은 곧 업장의 경쟁력이자, 우리 술 문화를 발전시키는 실질적인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전통주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매력이 많은 술입니다. 그렇기에 이를 소개하고, 경험을 설계하는 프론트라인인 업장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감각을 언어로 옮길 수 있는 능력’, 즉 소믈리에의 표현력에 달려있습니다. 이제 전통주 업장은 맛있고 좋은 술을 그저 '많이'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술의 매력을 어떻게 설명하고, 소통하며, 기억에 남게 할 수 있을지가 진짜 경쟁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언어표현의 기술, 경험의 축적, 교육의 연결성 — 이 세 가지가 전통주 산업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오늘부터 한 병씩, ‘말할 수 있는 술’을 여러분만의 언어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